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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태위공파교리공종회

가문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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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世 휘  돈

17世 휘 계흥

18世 휘

18世 휘

19世 휘 인복

19世 휘 인경

20世 휘  현

20世 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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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世 휘 사철

21世 휘 사신

20世 휘 사흠

22世 휘  즙

24世 휘

25世 휘 양래

25世 휘 창래

26世 휘 명언

28世 휘 수정

30世 휘 한양조씨

31世 휘 태흥

31世 휘 태길

     

 

본문

 

m01.png 31세 탁지부주사 휘 태길

 

papyeongyun4_05-21b.jpg주사공 휘 태길 묘표(국역)

공의 휘는 태길이요 자는 원상이요 성은 윤씨로서 본관은 파평이다.

고려 태사공 휘 신달이 시조인데 관직이 대대로 끊이지 않다가 문숙공 휘 관과 문강공 휘 언이에 이르러서는 훈업과 문장으로 고려의 역사에 드러났다. 휘 안비 태위문하시랑 찬성사는 안회헌의 문인이었다. 또 휘 돈은 이조 태종조에 홍문관 교리를 지냈는데 증손 영의정의 귀로 이조판서를 증직 받으셨다. 교리공의 증손 휘 인경은 영상으로 효성이라는 시호를 증직 받았다. 고조의 휘는 면승이니 문과에 합격하여 홍문관을 거쳐 대사간을 지냈다. 증조의 휘는 종성이고 어머니는 한산이씨로 현감을 지낸 휘영의 딸인데 자녀가 없어 공으로 양자를 삼았다. 본생고의 휘는 우성이고 본생비는 문화류씨인데 천종 기유년에 공을 낳았다. 공은 임오년에 진사가 되었고 을미에 탁지부 주사로서 통정대부의 품계에 올랐다. 배는 청송심씨 용규의 딸인데 3남 2녀를 두었다. 장남은 홍식인데 진사가 되어 주사를 지냈고 차남은 봉식이고 삼남은 붕식이다. 장녀는 참봉을 지낸 청풍 김규홍에게 시집갔고 차녀는 참서관을 지낸 전주 이민응에게 시집갔다. 손자인 병선은 큰집의 양자이고 큰 손녀는 평산 신보균에게 둘째 손녀는 달성 서정오에게 각각 시집갔다. 둘째집 아들은 병락과 병협이고 끝집 아들 병선은 출계하고 병기가 있다. 딸은 경주이씨 댁에 시집을 갔다. 증손과 현손 이하는 다 기록치 않는다.

papyeongyun4_05-21a.jpg공은 병인년 8월 7일에 돌아가셨는데 동오리 묘원에 장사지냈다가 불행히도 택지개발로 인해 무인년 겨울에 이곳 노곡리 적대산 인원에 면례하였다. 기묘년 봄에 공의 묘 또한 면례하여 배부인 묘와 합장하였다.

아, 공의 행위는 후손들에게 모범될만한 것이 많았는데 자손들이 이를 본받는 사람이 없었고 또 중간에 병란으로 증거가 될 만한 글들이 산실되어 이분의 행적을 살피려 해도 의지해 볼 데가 없는 것이 한스럽다. 비문은 사람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아 한 털만큼이라도 사실과 같지 않다면 이는 다른 사람을 표현한 것이 되니 글 짓는 것을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감히 경솔히 다루지 못하고 우측과 같이 아는 것만을 기록하여 종균과 정균이 나에게 부탁한 책임을 다하고 이 글을 들리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