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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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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m01.png 21세 판관공 휘 사신

 

papyeongyun4_05-11b.jpg판관공 묘표(국역)

공의 휘는 사신(思愼)이요 자는 공근(公謹)이니 청주판관을 지내셨다. 묘는 양주 동오리 송산 선산에 있은 지 500여 년이 지났더니 근세에 국가 개발지역으로 수용되어 부득이 적성 노곡방 적대촌 뒤산 인원으로 이장하였으니 선대 묘제의 경우를 따른 것이다. 여러 선영들이 하나의 산안에 자리 잡으니 장소가 심히 협소하여 눈에 거슬려 이것을 후손들이 한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묘역을 이미 옮김에 표석이 없을 수 없어 후손들이 상의하여 장차 석물을 세우려 함에 나에게 비문을 청하거늘 내가 심신이 노쇠하지만 같은 조상을 둔 의리로 어찌 사양할 수 있겠는가? 이에 삼가 간략히 서술하노라.

 

papyeongyun4_05-11a.jpg우리 윤씨의 가계는 고려 태사공 벽상공신 휘 신달(莘達)의 후예이다. 사전(四傳)하여 휘 관(瓘) 문숙공께서는 여진족을 평정하여 진국공신에 봉하여 졌고, 아드님이신 휘 언이(彦頤) 문강공께서는 훈업과 문장으로 고려사에 크게 드러났다. 조선에 들어와서 휘 돈(惇)은 태종조에 교리를 지내고 이조참판을 증직 받았으며, 고조인 휘 계흥(繼興)은 삼척부사를 지내고 좌찬성을 증직 받았으며, 증조인 휘 구(昫)는 부사정으로 영의정을 증직 받았으며, 조부인 휘 인경(仁鏡)은 영의정을 지냈으며 시호는 효성이고, 아버지인 휘 현(俔)은 절제사를 지내고 병조참판을 증직 받으셨다. 어머니는 경주이씨이며, 배위는 남원 양씨로 병사를 지낸 윤영의 따님이다. 슬하에 2남을 두었으니 장남은 즙(濈)이니 사과를 지냈고, 차남은 순(淳)이니 종사랑의 품계를 받았다. 손자는 석형(碩衡)이고, 증손은 진(璡)이고, 현손은 상기(商耆)이다. 나에게 비문을 청한 이는 후손 석기(石基)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