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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평윤씨태위공파교리공종회

가문을 빛낸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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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m01.png 31세 경기관찰사 휘 태흥

 

papyeongyun4_05-20b.jpg가선대부 관찰사 휘 태흥 묘표(嘉善大夫觀察使諱泰興墓表)

공(公)의 휘(諱)는 태흥(泰興)이요 자(字)는 문익(文翊)이요 아호(雅號)는 성산(星山)이다. 성(姓)과 본관(本貫)은 파평윤(坡平尹)으로 고려태사 시조 신달공(高麗太師始祖莘達公)의 三十一世孫이시다. 여진족(女眞族)을 정벌(征伐)하신 출장입상(出將入相)의 문숙관공(文肅瓘公)은 여조(麗朝)에 빛나는 선조(先祖)요 중종조 영상(中宗朝 領相)을 지내신 효성인경공(孝成仁鏡公)은 조선조(朝鮮朝)를 빛내신 선조(先祖)이시다. 고조 면승공(高祖勉升公)은 대사간(大司諫)을 지내시고 증조(曾祖)는 사복시첨정 수정공(司僕寺僉正守正公)으로 노곡리 선영(蘆谷里先塋)에 계시는 증이판 돈공(贈吏判惇公)의 배 군부인 순천박씨(配郡夫人順天朴氏)의 실전(失傳)한 묘소(墓所)를 찾아 수호(守護)해 오시며 유언(遺言)으로 박씨(朴氏) 할머니 묘(墓)발치에 묻어 달라 하셨기에 일찍이 이 산에 묻혀 계신다. 조희대공(祖希大公)은 합천군수(陜川郡守)고 고유성공(考維成公)은 증내부협판(贈內部協辦)이시다.

papyeongyun4_05-20a.jpg비(妣)에는 광산 김준현 현감공(光山金準鉉縣監公)의 따님이요 계비(繼妣)는 한양 조정만 진사(漢陽趙挺萬進士)의 따님이요 계비 능성구씨(繼妣綾城具氏)는 동섬공(東暹公)의 따님이시다. 公은 종성공(宗成公)의 삼남(三男)으로 태어나 유성공(維成公)의 후사(後嗣)를 이으셨다. 생가(生家)의 비(妣)는 청송 심택지공(靑松沈宅之公)의 따님이요 계비(繼妣)는 달성 서식공(達城徐栻公)의 따님이요 계비 성산이씨(繼妣星山李氏)는 현득공(顯得公)의 따님으로 公을 낳으셨다. 配에는 한산이씨(韓山李氏)로 규로공(奎魯公)의 따님으로 슬하(膝下)에 일남(一男)을 두셨다. 중추원의관 형식공(中樞院議官亨植公)으로 배 풍천임씨(配豊川任氏)와의 사이에 병위공(炳瑋公)을 두시고 후배 서천이씨(后配舒川李氏)는 병인공(炳璘公)을 두었고 경주 이승우공(慶州李升雨公)을 여서(女婿)로 맞이했다. 公은 西紀 一八四一年 十二月 二十七日에 생출(生出)하여 一九○六年 九月 八日에 卒하시니 향년(享年) 六十六歲로 화려한 관작으로 일생(一生)을 마치시다. 一八六四年에 진사시(進士試)에 급제(及第)하고 一八八二年 九月에 건릉참봉(健陵參奉)이 되고 十二月에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과 교리(校理)와 응교(應敎)와 사헌부장령 집의(司憲府掌令執義)와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과 문겸선전관(文兼宣傳官)과 사복시정(司僕寺正)과 장악원정(掌樂院正)과 전영군사마(前營軍司馬)와 성균관사성(成均館司成)을 지내고 통정(通政)으로 승품(陞品)하여 형조병조참의(刑曹兵曹參議)와 조사(曹司)와 오위장(五衛將)과 동부우부승지(同副右副承旨)와 비서원승(秘書院丞)과 궁내부참서관(宮內府參書官)과 시종장례(侍從掌禮)와 봉상시부제조(奉常寺副提調)를 역임(歷任)하시고 가선(嘉善) 품계로 영희전(永禧殿)·경효전(景孝殿)·두직(杜稷)·홍릉(洪陵)·종묘제조(宗廟提調)와 귀족원경(貴族院卿)과 특진관 장례소경(特進官掌禮小卿)이요 외직(外職)으로는 평산부사(平山府使)와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를 지내시다. 족질(族姪) 용식공(容植公)이 찬(撰)한 묘표(墓表)에 의(依)하면 公은 간고(簡古)한 용모와 근검(勤儉)한 성품으로 시례(詩禮)의 세업(世業)을 능히 이으셨고 지명(知名)의 붕우(朋友)들과 노니시다. 벼슬길에 오른 二十餘年 동안 임금님을 근신(謹愼)으로 섬겨 추형(樞衡)이 되시고 온공(溫恭)으로 규범을 삼으셨다했다. 구 양주동 오리릉곡 정좌원(旧楊州東梧里陵谷丁坐原)에 산소를 드렸는데 직손(直孫)의 발길이 끊겨 실전(失傳)의 지경에 이르렀다가 종증손(從曾孫) 종균(鍾均) 정웅(政雄)의 정성(精誠)으로 잃은 유택(幽宅)을 되찾아 무인(戊寅) 동절(冬節)에 노곡리 선영(蘆谷里先塋)으로 함께 모셔 그 빛나는 행적(行蹟)을 묘비(墓碑)에 새겨 영원(永遠)히 후예(後裔)들의 귀감(龜鑑)으로 삼아 기리고저 한다.

 

성산대감(星山大監) 쌓은 행적(行績) 태산(泰山)보다 높았는데

무상(無常)한 세월(歲月)이 핥아 낮달처럼 희미해라

묘갈비(墓碣碑) 되새긴 사연 길이 새길 사표(師表)여